한 여름의 영화축제,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집행위원장 김영빈, 이하 PiFan)가 7월 18일 화려한 막을 연다. 매년 개성있는 영화를 중심으로 이제는 세계 최고 권위의 장르영화제로 발전한 PiFan. 올해는 총 44개국 230여 편의 작품들이 소개돼 PiFan을 찾는 관객들에게 짜릿함을 선사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장르영화 매니아들을 설레게 할 소식이 있다. 바로 남미 영화의 거장 알레한드로 조드로프스키의 회고전이 열리는 것. PiFan2013에서는 [회고전_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기괴함의 시인]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걸작들을 소개한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세계 영화의 거장 중 하나로 들리기보다, 이 이름은 어떤 하나의 세계나 우주를 의미하는 또 다른 고유명사처럼 들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조도로프스키의 이름은 독보적이다. 세계 영화사의 흐름 안에서 새로운 미학적 언어를 제시한 시네아스트로도, 국제 영화제의 화려한 수상이력으로도 기억되지 않는다.

1968년 <판도와 리스>를 시작으로 8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는 조도로프스키는 말 그래도 ‘충격’ 그 자체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성서와 신화, 금기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는 그의 작품들은 영화가 건넬 수 있는 이야기와 그 표현 영역의 한계를 최대치로 확장시켰다.

칠레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유대인인 조도로프스키는 1950년대 페르난도 아라발, 롤랑 토포르 등 당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파닉 무브망’이라는 그룹을 조직, 초현실주의적 감수성과 영화 매체의 조합을 꾀한다. 지금까지도 조도로프스키의 영화세계를 지배하는 강력한 초현실주의적 이미지와 세계는 당시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1968년 공개한 그의 첫 장편 영화 <판도와 리스>는 그 등장부터가 충격이었다, 당시 관객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금기적 소재와 파격적인 이미지들은 야유와 함께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지만, 그의 이름을 강력하게 각인시킨 문제작이었다.

조도로프스키의 이름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건 1970년에 발표한 그의 불세출 걸작 <엘 토포>였다, 성서에 기반을 둔 서부극인 이 작품은 조도로프스키가 각본, 주연, 연출을 맡으면서 아직까지도 조도로프스키의 영화관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 영화에 뜨거운 반응을 보인 팬 중에는 비틀즈의 존 레논도 끼어있다는 일화는 유명한데, 이를 계기로 존 레논은 조도로프스키의 다음 작품인 <홀리 마운틴>의 제작비를 전액 지원하기도 했다,

그 악명에 걸맞게,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력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독특한 영화세계와 작가적 의지 때문에 그는 상업영화권과 끝까지 타협하지 않는 독립제작을 고집했으며,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작품의 권리를 소유한 제작자와의 오랜 공방으로 그의 걸작들은 30여 년 간 관객을 만나기 힘들었으며 할리웃과는 결코 화해하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판도와 리스>, <엘 토포>, <홀리 마운틴>과 함께 이번 PiFan2013의 회고전에서 상영되는 신작 <현실의 춤>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 기반한 자서전적 영화인 이 작품에서 그는 전작에서 익숙한 초현실적 이미지와 기이한 상상력을 보다 보편적인 이야기 안에 풀어넣는다. 올해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최초로 공개된 <현실의 춤>은 결코 죽지 않는 노장감독의 힘이 느껴지는 걸작이다.

또한 조도로프스키는 영화와 만화, 각본과 연기, 작곡 등 다양한 창작활동을 끊임없이 이어왔는데, 회고전에서 소개되는 또 다른 작품인 <의식-사이코매직>은 조도로프스키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로 그가 정신과 의사로 출연하기도 했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회고전의 개최와 함께, 조도로프스키의 영화와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메가토크: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영화와 삶’도 7월 22일 월요일 오후 2시 CGV 부천 3관에서 <엘 토포> 상영에 이어 마련된다. 이번 메가토크에서는 <엘 토포>에서 조도로프스키의 어린 아들로 출연하고 신작 <현실의 춤>의 주연을 맡기도 한 조도로프스키의 아들 브론티스 조도로프스키와 <의식-사이코매직>의 프로듀서이자 조도로프스키의 오랜 지기인 지안루이기 페론, 영화평론가 김성욱이 조도로프스키의 스크린 안과 밖 모두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한편 6월 18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더욱 재밌고 강력해진 프로그램을 선보인 PiFan은 세계 최대의 장르 영화 축제에 걸맞은 행사로 거듭나기 위해 준비 중이며, 오는 7월 18일부터 28일까지 11일간 부천시 일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상영작 정보-

판도와 리스 Fando and Lis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Mexico｜1968｜93min

'타르‘라는 이상향의 도시를 찾아 파괴된 세상을 헤쳐나가는 젊은 커플 판도와 리스의 이야기. 그들은 타르가 모든 이들의 꿈을 이루어주는 곳이라고 믿지만 여정이 계속될수록 그들은 타락해가고 점점 미쳐간다. 페르난도 아라발의 동명 연극을 영화화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충격적인 데뷔작.

엘 토포 El topo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Mexico｜1970｜125min

총잡이 엘 토포는 6살 된 어린 아들과 말을 타고 사막을 건너던 중 참혹한 학살이 벌어진 마을에 당도한다.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 그는 악당들에게 복수하고 악당 두목의 여인이었던 마라와 사랑에 빠진다. 마라와의 만남으로 그의 초현실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이름을 세계 영화계에 알린 문제적 작품이다.

홀리 마운틴 The Holy Mountain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Mexico․USA｜1973｜114min

예수를 닮은 한 사내가 종교적이면서도 신성을 더럽히는 이미지로 가득 찬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한 곳을 헤매고 있다. 신비의 지도자를 만나게 된 그는 태양계의 행성을 대표하는 부와 권력을 동시에 갖고 있는 7명의 인물을 소개 받는다. 그리고 이 9명의 사람들은 신을 대신하는 현자들을 찾기 위해 성스러운 산, 홀리 마운틴으로 향한다. 금기에 대한 조도로프스키의 자유분방한 도전.

의식-사이코매직 Ritual-A Psychomagic Story

감독 줄리아 브라찰레, 루카 임메시｜Italy｜2013｜93min

서로를 아끼는 열정적인 커플 리아와 빅토르는 리아의 임신으로 인해 어긋나기 시작한다. 우울증에 빠진 리아는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 받기 위해 아가타 이모가 사는 음산한 기운의 고풍스러운 저택으로 향한다. 조도로프스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매혹적인 심리마법 드라마. 조도로프스키가 의사 역할로 출연한다.

현실의 춤 The Dance of Reality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Chile｜2013｜130min

84세의 나이에 선보인 신작 <현실의 춤>은 동명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칠레에서 보낸 그의 유년기를 보여준다. 현실은 우리의 상상력이 빚어낸 춤과 같다는 그의 생각이 은유, 신화, 시로 점철된 그의 일대기와 함께 영화 속에서 펼쳐진다. 조도로프스키 특유의 마법과 같은 이미지와 사운드가 독특한 서사 안에서 한 편의 시와 같은 감동을 준다.